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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진 소목학교 - 전주장이란

 

전주장의 유래

느티전주버선장

느티(龍目)전주버선장 ©소병진

전주(全州)는 호남지방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평야가 많고 기후가 온화하여 생활의 여유가 있었으며 이왕가(李王家)의 본관으로 조선왕조 5백 년을 통하여 성역으로 간주하기도 한 곳이다. 전라 감영이 있었으며, 중앙 관리들과 왕가 또는 집권 계층과 사대부 계층의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다. 이렇듯 전주는 중앙과 밀접한 관련성을 배경으로 관의 필요 때문에 외공장의 대부분이 전주에 집결해 있었다. 그 때문에 장식용구, 가구 등의 수요가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가구공예가 발달했다.

조선후기에는 실학사상이 사회 전반에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수공업은 봉건적 과정에서 한 걸음 나아가 분업화되었고 관속에서 벗어난 소목들이 사공장(私工匠: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농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로 장식, 가구 등의 공예품은 지역적 특징이 더욱 짙게 나타났고 전주장 역시 이런 변화 요인 속에서 지역적 특성이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전주의 가구공예가 발달하고 그 기능이 유지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원인은 느티나무, 먹감나무 등 질 좋은 목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재료 수급의 이점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전주는 지리적인 여견과 사회, 환경적 요인으로 생활의 여유가 있어 가구의 수요가 많았고 풍부한 재료와 소목의 기술을 바탕으로 가구공예가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해 왔다. 전주장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주지역의 대표적인 가구로 사랑방과 안방 등의 공간에서 사용했던 수납가구 중 하나이다.

먹감전주버선장

먹감전주버선장 ©소병진

전주장은 용도와 규모, 형식에 따라 반닫이장, 문갑반닫이, 전주이층장, 전주삼층장, 전주반닫이장, 전주책장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전주장은 크게 남성의 공간인 사랑방과 대청마루에서 책장이나 문서, 문방구 등을 보관하는 문방가구로 사용했으며 여성의 공간인 안방에서는 옷을 보관하는 옷장으로 살림살이를 보관하는 머릿장이나 문갑장의 역할을 겸한 다용도 수납가구였다.

전주장은 전주를 비롯하여 인근 지역인 완주(용진과 봉동)에서 주로 제작되었는데 전주의 남동쪽을 둘러싼 구릉과 험산에서 목재 조달이 손쉬워 가구 제작의 자연조건을 갖추었던 것이다. 전주장은 조선 후기에 생산이 중단되었는데 전주를 중심으로 외각 지역에서 주로 민간에 의해 전래되었다.

현재 조선시대 수납가구 중 지역적 특색이 반영되어 전승되는 품목은 반닫이 등이 고작이고 지역적인 특성과 원형을 유지하고 전승되는 품목은 매우 적다. 수납가구 중에서는 전주장 정도가 지역적 특징이 강하게 남아 있는 품목이며 현재까지 지역의 소목장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전주장은 주로 500년 이상 묵은 질 좋은 고사목의 무늬(龍目)만을 골라 사용하였고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도 완전 통판만을 사용하였다. 전면 위치의 면 분할에 있어 다른 지역과 달리 쇠목(장롱의 앞쪽 두 기둥 사이에 가로 건너지르는 나무)이나 동자목(가구에서 서랍 공간의 사이를 칸을 막아서 짜는 좁은 나무), 울거미(테두리)는 조립할 때 굴곡이 없이 제작된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결합구조를 일명 민농장이라 한다.

특히 전주장 제작에서 특이한 점은 앞면의 알갱이(알판, 화장판)를 제작하는 방식인데 전면의 화장판과 뒷면의 홍송이나 오동판의 각각 다른 부재 적층 사이 한지를 배접하는 방법은 전주장에서만 사용하는 적층기법이다. 이는 목재 특성상 계절적 온도(습도) 변화에 따른 수축과 팽창의 폐단을 막기 위해 고안된 소병진 소목장의 발명 특허이다. 앞판과 뒷판을 몸통과 결합하는 방법은 구조상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거멀장석(나무그릇의 사개나 문짝 따위의 모서리를 맞춘 자리에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양쪽을 걸쳐서 댄 쇠 장석)과 광두정(길이가 짧고 머리가 넓적한 못)을 양쪽 기둥에 촘촘히 박아두어 제작에 견고성을 강조하였으며, 전주장의 조형미로 태극문양과 길상문양의 상감치장은 전주장에서만 돋보이는 제작기법으로 장과 문갑의 결합구조, 장과 반닫이의 결합구조 또한 실용미를 드러내는 전주장의 특징이다.

또한 전주장이 대부분 타 지역에서 생산된 장(欌)보다 일반적으로 낮은키를 지닌 것은 그 비례미의 측면에서 볼 때 주택 구조에 따라 온돌방의 평좌(平坐) 생활에서 비롯된 사용자의 심리적 안정감을 배려한 인간 공학적 치수이기도 하다.
장석 또한 투박하고 간결하게 만(卍)자와 불로초 문양을 시문하여 부착하였고 도장기법은 유칠(油漆)로 마감하여 목재의 자연적인 목리의 무늬(山水)를 주로 강조하였기에 검소하고 고졸한 분위기의 연출이자 예술품이다.

지난한 세월의 잘곡 속에서 역작(力作)으로 복원(復原)된 전주장은 자연과 호흡하는 천연소재(원자재)가 친환경으로 다시 태어나 조상의 혼(魂)이 살아 쉼쉬고 잔잔한 미소와 넉넉함이 물씬 베어있어 자연에 순응하는 예지(藝智)가 듬뿍 담겨 있는 것은 또 다른 전주장의 특징이며 “조선한식가구전설”의 살아 숨쉬는 무형(無形) 자산이다.

전주이층농 전주느티애기버선장 느티전주문갑장

전주이층농 ©소병진

전주느티애기버선장 ©소병진

느티전주문갑장 ©소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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